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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상무색]

 

 

 

 

 

 

 

 

사람은 태어나면서 저마다의 운을 가지고 있다. 누가 정한 법칙인지 운의 강도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운을 극도로 타고난 사람과 절망적일 정도로 운과 친하지 못한 사람. 나는 아마 전자쪽에 해당할 것이다. 그 조차도 넘어 절대적인 운을 거머쥐고 있는 놈이지 않았을까. 지나치게 운이 좋다고 하면 부러워할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나 자신에게 오는 운을 위해 많은 것이 희생당하는 것을 목격하면 그리 썩 유쾌한 기분도 아니었다. 내가 없어져야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갈 줄 몰랐다.


 

*

 

  

어지러운 소음이었다. 눈앞의 세계가 마구 흔들려 뒤틀리기 시작했다. 나는 단 한마디의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제자리에 우뚝 서 있기만 했다. 땅에 발이 달라붙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수아비가 된 심정이었다. 입을 열어도 말 한마디, 비명 한 움큼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내 눈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잊은 채로 눈앞의 광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은 큰 화재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씨가 번져 폭발했다. 나는 화재 현장에 있었지만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거세게 타오르는 뜨거운 불길 앞에서 그저 나약하고 작은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미세하게 방황하는 눈을 아래로 내리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수다스런 조잘거림에 곧잘 귀를 기울여주고, 길어진다 싶으면 귀찮다고 태연히 손을 내젓고 있던 부모님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몸을 흔들어 보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내 부모님과 똑같이 그곳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라곤 단 한명도 없었다. 나는 이명이 울부짖는 귀를 양 손으로 덮어버리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간신히 수습했다. 이어가기 버거운 호훕을 간신히 토해내며 간신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야 나는 유일한 생존자로 구조될 수 있었다.

나만이 운이 좋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린 내게는 평생을 가도 쓸 수 있는 막대한 유산이 주어졌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고 어린 나이에도 제법 똑똑했던 나는 혼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지능을 갖추고 있었다. 내 변호사는 어린아이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퍽퍽한 삶이라고 말하면서 연민을 베풀어 가정부를 고용해 주었다. 내게는 거의 가정부가 쓸모가 없었다. 그럼에도 어리다는 이유로 가정부는 꼭 필요했다. 

어느 날은 가정부가 휴가를 내고 집을 비운 날이 있었다. 그때 하필이면 내 친구가 심하게 아팠던 날이었다. 먹은 것을 토해내고 심각하게 열이 올랐고, 혀를 빼어 호흡을 이어가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 당시의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아버지가 남긴 서재에서는 많은 세계를 엿보고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친구에게는 그걸로 충분하지 못했다. 반드시 병원에 가야했고 시계로는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열려 있는 병원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그 날은 비가 내렸고, 나는 작은 팔로 내 친구를 끌어안고 사방팔방으로 운영 중인 동물병원을 찾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 일은 쉽지 않았다. 신호등에 도달했을 때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하고 건넌 나는 무시무시하게 달려드는 헤드라이트에 눈을 감았다. 차에 치였다. 사고를 당했다. 그 감각이 명확하게 몸에 새겨져 있었다. 내 작은 몸은 바닥을 뒹굴었고 흐려진 시야에 끔찍한 광경이 보였다.

쓸려 내려간 듯 길게 이어져 있는 핏자국. 그 핏자국이 끊어진 곳에는 작고 여린 생명체가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있었다. 땅에 번진 핏자국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 생명체가, 그저 잠들어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인정해야만 했다. 내 곁을 지키던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운이 좋았다. 나만이 운이 좋았다.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에 그토록 잃고 싶지 않았던 존재를 잃고 말았다.

흔들린다. 시야가 흔들린다. 세계가 뒤집힌다. 그 직후 나는 정신을 잃었고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대면한 의사가 진단결과를 알려왔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친구를 찾았지만 그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휴가를 갔던 가정부가 부리나케 병실로 들어와 내 안위를 살폈지만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노심초사 하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그녀를 위해 괜찮아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병실을 둘러보았고 내 발밑을 뚫어져라 응시하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정신병에 걸린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싸울 때 자주 오가던 말. 차라리 정신병에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극이었다.

나만 운이 좋았기 때문에 일어났던 비극. 만약에 내 타고난 ‘운’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몇 만명의 사람이 기뻐하겠지.

나만 운이 좋았던 일은 살면서 수차례나 반복이 되었다. 나와 잠깐 대화를 나눴던 친구 중 한 명이 다음 날 사고가 나서 전치 3주의 부상을 입거나, 지나가다 인사를 건넸던 아주머니가 차 사고가 날 뻔했다던가... 대체로 주변 사람들은 나와 엮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서 신문 1면에 커다랗게 장식이 될 정도로 큰 사고까지. 그런 일이 일어날 때는 대체로 내가 그에 합당하는 행운을 경험하게 되기도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결국엔 내가 피해의 원인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많은 운을 경험했고, 신호탄처럼 내 불행이 대신 옮겨간 것처럼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그것을 멍하니 지켜보면서 나는 무언가의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았다.

“오늘도, 운이 좋네.”


맥없이 떨어진 말이 펼쳐진 손바닥 위를 하나의 숨결이 되어 간질이는 기분이었다. 어느새 입버릇이 된 말은 혀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운’이라는 재능을 원망한 적은 있었지만, 삶 자체를 원망한 적은 없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며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언젠가 세상에 존재하는 희망에 나도 보답 받을 수 있을 테니까. 희망을 믿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의 종교를 믿는 독실한 신도들과 같은 마음이 작용한 결과다. 희망은 언제나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는 존재이다.

나 같은 쓰레기도 구원받을 자격은 있지 않을까.

Danganronpa 3 Despair Ar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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