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터 사이언스 - Outer Despair]
* 절망 키리기리와 희망 쥰코(2P쥰코)
* 원곡 내용 날조 및 캐릭터 붕괴 심하게 있습니다.
* 쥰코를 사랑하는 키리기리가 시간 루프를 해 연기를 합니다.
"어서와."
읊조리듯 작게 내뱉었다. 이내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로 돌아와 다시 귓속을 파고든다. 텅 비어버린 공간 속에서 그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미친 사람처럼 지껄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돌아오는 자신의 소리가 거슬리다는 듯 완전한 어둠에 싸인 허공을 보며 얼굴을 미세하게 구겼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아도, 천장이 너무나도 높다 못해 보이질 않았다. 그 위로도 계속 어둠 뿐이다.
그럼 주변도 어둠뿐일까?
아니야. 자신의 생각이 어긋났다는 것을 확인하자 기쁨에 겨워 입꼬리가 바르르 떨었다. 어둠을 걷어내는 존재가 한명 있었지. 바로 곁에 있는 존재. 그는 혼자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텅 빈 공간 속에 말을 거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는 완전한 절대악일지언정 미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는 다른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에노시마 쥰코, 당신은 이 모든 참극의 여왕님이잖아."
참극. 풀린 동공으로 바닥에 기다시피 앉아 있던 에노시마 쥰코는, 그 단어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그를 올려보았다. 형형하게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있음을 알았을때 움찔 몸을 떨었다. 그것은 아주 기묘한 광경이었다.
에노시마 쥰코를 향해 일말의 비웃음을 담은 시선을 보내는 그 이는, 도저히 어떤 위협을 가할 존재는 아니라고 짐작케 하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건만, 사람을 해할 종류는 아니라고 직감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그런 것이다. 적어도 첫 인상만큼은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어둠 속을 날카롭게 꽂는 붉은 동공만 제외한다면.
그러나 그런 그녀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짓눌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모든 행동과 감정이 억제되고, 제압되는 그런 기분. 그런 불쾌함에 젖어 손 끝이 가늘게 미동했다. 싸늘하고 차갑다.
"여왕님."
"나는 여왕님 따위가 아니야!"
여왕이라는 호칭을 듣자 진절머리가 나는 것만 같다. 그녀는 마디마디마다 힘을 주어 발음했다. 마치 자신이 가장 부정하고 싶다는 어조로. 악문 이가 빠득 마찰음을 내며 갈렸다. 차가운 돌바닥에 쓸린 살갗에서 불 같은 느낌마저 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말을 듣질 않고 오히려 떨림에 깊이를 더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이 무저갱은 끝장이 날 줄 몰랐다.
"싫은거야? 아아, 하지만 여왕님. 사실은 당신도 알고 있잖아. 사실은 누구보다도 당신이 원하고 있었던건데. 응? 내 눈을 바라보고 말해줘. 사람이 이야기 할때 눈을 닫아버리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
"시시하네. 사실 모두 죽어버린 거, 당신 탓이잖아. 응, 하지만 지금도 나름대로 괜찮아. 역시 오토나시 료코와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아름답네."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낯선 동시에 낯익은 이름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였다. 자신은 초고교급으로서 살인 게임에 강제적으로 참가한 학생이었을 뿐. 그녀에게 살인의 잘못이 있다면, 죽어가야 했던 주변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는 사실 정도일까. 그러나 그것마저도 흑막에 의해 이루어진 지독한 책임 전가였다.
자신을 탓하는 키리기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최후 2인의 생존자, 에노시마 쥰코와 키리기리 쿄코. 분명 그들은 인고의 학급재판을 끝내고 간신히 다음 날을 위해 서로를 격려하며 잠자리에 들었을 터인데,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은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주했던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절망적인 흑막. 그 정체가 바로 키리기리 쿄코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다.
그로부터 키리기리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본래의 그녀와는 다르게 말 수도 눈에 띄게 늘었고, 어조는 점점 희열에 들뜬 미치광이처럼 변해갔다. 그 광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두드러져서, 본래 키리기리의 흔적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자신과 함께 희망론을 펼치던 그녀가 이런 존재였다는 사실은 온 몸을 차갑게 조여왔다.
더불어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도는 착각마저 일었다. 물끄러미 자신을 향하는 타는 듯한 시선이 견디기 어려워 그녀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유연한 빛을 띤 백발이 흘러내려 상처 투성이인 자신의 손을 덮었다. 낯설다. 그러나 동시에 낯익었다. 도대체, 무엇이?
"에노시마 쥰코. 거짓부렁인 희망이라니 우습네. 이만 기억 해낼 때도 되었을텐데."
광적으로 떠들다 갑자기 얼어붙은 어조로 쏘아붙인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에 실망 했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그저 지금으로서는 공포스러운 존재일 뿐인 그녀를 향하여, 쥰코는 시선을 떨구고 나직이 속삭였다.한 때는 동료라는 명목 속에 희망을 좇던 그녀를 향하여 말이다. 환멸감 속에서 씹어삼키듯 토해냈다.
"괴물…, 같아."
"응?"
"……."
"아아."
무슨 말인지 대번에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괴물이라. 나의 여왕님에게서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아. 고양되는 흥분이 전신을 뒤덮음을 느꼈다.
"괴물 같다니, 그거 멋진 일이네. 여왕님. 하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무엇이 그리 멋지다는 건지. 고개를 들어 키리기리를 바라보는 순간, 쥰코는 막연한 공포감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강물처럼 뒤엉켜 흐르는 몇 마리의 뱀이 그녀를 향하여 고개를 쳐들고 느릿하게 기어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뒤집혔다. 찌르는 듯한 소음이 고막을 헤집는다. 점점 더. 깊숙하고 은밀하게, 모든 것이 부드럽게 사라져간다. 시공간이 한꺼번에 역류하며 에노시마 쥰코의 인격을 좀어갔다. 손 끝에서부터 찬찬히, 이윽고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침대 속에서 소녀는 깨어났다. 절망적으로 질리는 표정을 한 채로, 그녀는 곁에 누운 또 다른 소녀를 자신의 품에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아아, 이번에도 역시나 질리는 꿈이였네…, 키리기리 쿄코. 마치 너만큼이나 말이야."
"…, 당신을 위해서라면 이런 건 얼마든지 반복 해도 좋아."
"역시 질려버린다니까."
시간을 역행해온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 안을 두둑히 채우고 있었다.
